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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외질의 전생? 엔초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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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라인_S 2018. 3. 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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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10살때인 1908년 볼로냐에서 자동차 경주를 처음 본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13세때부터 운전을 했으며 스포츠에 상당한 재능을 보여 16세때 스포츠신문에 축구기사를 기고해 이름을 날렸다.


1915년 자신이 소속된 신문의 기사에서 이탈리아인 디 파르마가 미국 최대 레이싱 대회인 인디아나 폴리스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보고 과거 자신의 꿈인 레이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세에 꿈을 이루기위해 자동차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한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최고의 레이서 중 한 명인 페리체 나지로를 만나 그의 소개로 스포츠카 메이커인 CMN사로 직장을 옮기고 운전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에 데뷔하게된다.


첫 출전한 레이싱은 50km 산길 달리기 경주로 종합 11위를 기록했다. 1920년대 알파로메오의 레이서였으나 1929년 자신만의 레이싱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들었고 이것을 보통 페라리의 시작으로 본다. 오늘날 페라리 엠블럼의 SF는 이 이름의 약자이다. 그리고 이 팀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이싱 팀이 되었다. 


1939년 알파로메오 측에서 자신의 레이싱팀 스쿠데리아를 흡수하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의도를 알아챈 페라리는 알파와 결별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첫 생산차량은 1940년에 나온 Tipo 815. 


그러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었다. 1947년에는 드디어 페라리의 진가가 그랑프리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이라는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막강한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들인 알프레도 페라리를 끔찍히 아껴 차량을 만드는데 수많은 의견교환을 나눴으며, 후에 지병으로 알프레도가 죽자 그 이후 생산된 모든 페라리 V6차량에 아들의 별명인 디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 디노는 페라리가 아니다. 이유는 페라리 엔진이 아닌 피아트사의 엔진을 탑재하고 출시되었기 때문에 페라리 이름으로 팔지않았기 때문. 그런데 이것도 애매한 게 디노 308모델의 경우 후기형부터는 페라리 마크를 붙여서 팔았다. 때문에 디노는 엄밀히는 페라리는 아니지만 사실상 페라리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1988년 8월 14일, 페라리는 90세의 일기로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한편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의 창업주 엔초 안셀모 페라리와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슈퍼카이다. F40, F50에 이어 나온 페라리의 기념 모델이기에 흔히 코드명 F60 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엔초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일 뿐이다. 또한 1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차이기 때문에 페라리 엔초라 하지않고 엔초 페라리가 맞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회사명까지 붙인 정식 명칭은 '페라리 엔초 페라리'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매체나 언론에서 F60이나 페라리 엔초라고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페라리의 작명법이 원래 좀 규칙이 없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냥 엔초 페라리가 공식 명칭이며 다른 코드명이나 넘버는 공식적으로 없다.



카윌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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