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홍콩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았던 구룡성채(九龍城寨)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무법천지의 도시’, ‘빛이 들지 않는 미로’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곳이었다. 건물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햇빛조차 들어오기 어려울 만큼 밀집된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생활했다. 마치 영화 속 가상의 도시처럼 보이지만, 구룡성채는 실제로 존재했던 곳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면 구룡성채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그렇게 특이한 도시가 되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구룡성채의 역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이곳은 중국 청나라가 만든 작은 요새였다. 그러나 1898년, 영국이 홍콩을 조차하면서 구룡반도 대부분이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이 작은 성채만큼은 중국 영토로 남았다. 문제는 이후 중국과 영국 모두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세기 중반, 중국 내 혼란을 피해 이곳으로 많은 난민들이 몰려들었고, 정부의 개입이 없자 자연스럽게 무허가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지어졌다. 1950~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건물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거대한 ‘건물 덩어리’가 되었다. 범죄와 마약의 소굴로 악명 높았으며 특히 삼합회가 구룡성채를 지배해 성매매와 마약 거래 등 온갖 범죄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도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무법지대였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갔다.
구룡성채는 약 2.7헥타르(축구장 3~4개 크기)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최고 14층까지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한때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고,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 밀도를 기록한 도시였다.
건물은 허가 없이 지어진 탓에 구조적으로 엉망이었고, 미로 같은 복도와 좁은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기와 수도는 인근 지역에서 몰래 끌어다 쓰거나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위생 상태가 열악했으며, 창문이 부족해 대부분의 내부 공간은 늘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구룡성채는 단순한 범죄 도시가 아니라,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한 자급자족의 공간이었다. 소규모 공장, 식당, 학교, 심지어 치과까지 운영되었으며, 주민들은 서로 돕고 살아갔다.
1990년대가 되면서 홍콩 정부는 더 이상 이곳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1993년, 홍콩 정부는 구룡성채 철거를 결정했고, 보상금을 지급하며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1994년 철거가 완료되었고, 그 자리에는 지금의 ‘구룡성채공원(Kowloon Walled City Park)’이 조성되었다.
구룡성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독특한 모습과 역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게임,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도 영감을 주는 요소로 등장하며, ‘현대판 판타지 도시’처럼 묘사되곤 한다.
비록 법과 질서가 사라진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갔다. 구룡성채는 단순한 범죄 도시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홍콩을 방문하면 구룡성채공원을 볼 수 있지만, 그곳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구룡성채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으며, 전설처럼 남아 있다.
댓글 영역